주르차니 페렌츠는 헝가리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이다. 그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헝가리의 총리를

지냈다. 그에 앞서, 2003년과 2004년 사이에는 체육청소년부 장관으로서 지냈다. 그는 연정이

붕괴되어 메드제시가 사임하면서 헝가리 사회당(MSZP)의 대표로 주르차니가 2004년 8월 25일에

총리로 선출되었다. 초기에는 젊고 개혁적인 인물로 찬사를 받았으며,2006년 4월 총선에서 사회당을

다시 제1당으로 이끌며 연정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고 또한 Balatonőszöd에서 한 그의 연설에서 자신의 모국인 헝가리에 대해

비하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그 해 9월부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2007년 2월 24일, 2007년에 89%의 투표율을 얻으며 사회당의 리더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9년 3월

21일에 금융 위기에 따른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여 결국 사임을 발표하였다. 3월 28일에는 사회당

당수직도 내놓았으며, 4월 14일 버이너이 고르돈이 후임 총리로 선출되었다. 2011년 10월에

민주연합(DK)의 설립을 위해 주르차니와 몇몇 맴버가 사회당을 그만두었다.

 

그의 어린시절

주르차니는 헝가리의 파파 라는 지역에서 Ferenc Gyurcsány Sr.와 Katalin Varga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으며, Éva 라는 여자형제도 있다. 현대 법률서류에 따르면, 주르차니의 아버지는 여러차례

경범죄로 처벌을 받았었다. 주르차니 아버지의 잦은 알코올 소비로 인해, 주르차니는 그의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지만 그의 어머니의 검소한 습관 덕분에 규칙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주르차니는 부다페스트에서 2년간 Apáczai Csere János 고등학교에 다녔고 파파(Pápa)로 돌아와서

졸업을 했다. 그는 교사로서 공부를 했으며 1984년에 페치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얻었다. 그리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1990년에 학위를 얻었다. 1981년에 그는 KISZ(청년 공산주의 조직)의

기능을 맡았으며 1984년과 1988년 사이에는 페치의 조직 위원회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대학들의 KISZ 중앙 위원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1989년에 정치적 변화 이후,

그는 헝가리 민주청년동맹(DEMISZ)의 부회장이 되었다.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후 1990년대에는

국유 재산 민영화 과정에서 싼 값으로 국가 재산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였고, 정계 복귀

직전에는 헝가리에서 50번째로 재산이 많은 젊은 부호로까지 성장하였다.

  

     정치로의 복귀

주르차니는 2002년에 헝가리의 이전 총리인 피터 메드제시의 전략 고문으로 정치계에 복귀했다.

2003년 5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주르차니는 아동 청년 스포츠 부서의 장관을 역임했었다. 그는 2004

1월에 Győr-Moson- Sopron 도시에서 MSZP(사회당)의 회장이 되었고 2004년까지 역임했다. 같은 해

여름, 총리 피터 메드제시와의 불화로 인해 주르차니는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러고 일주일 뒤, 연정이

붕괴되어 메드제시가 사직을 하였고 MSZP는 주르차니가 자유민주주의자 동맹(SZDSZ)에 적합하다

판단하여 총리로 뽑았다.

    

  국무총리

주루차니는 2006년 선거에서 그의 당이 386석 중에 210석을 차지하며 총리를 연임했다. 2007년 2월

24일에 그는 89%의 투표 지지율로 그의 당의 리더가 되었다. 2006년 선거에서 그가 당선된 이후 그는

헝가리의 예산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재정 정책을 도입했다. 이 긴축정책은 시민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로 주 야당인 피데슨(Fideszon)에 의해 비판되었고, 또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에게

연금을 포함한 사회적 이익에 대해 쓰는 자금을 충분히 줄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였다.

주르차니는 공사주의의 붕괴 이후 국내 보건 시스템의 합리화와 현대화를 위해 보건의료개혁의 도입을

시도한 첫 국무총리였다. 그의 새롭고 더욱 효과적인 보건 시스템을 위한 노력은 자신의 당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보건 서비스에 대한 위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이유로 부정되었다.

2006년 4월 총선에서 사회당을 다시 제1당으로 이끌며 연정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해 9월부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대중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주르차니 총리는 사임을 거절했다. 결국

데모인원이 2000명에서 8000명으로 불어났고 헝가리의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몇 주간 주르차니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 해 10월, 여당은 지방 선거에서의 대패배를 겪었다.

 

신임투표

국무총리로서 주르차니는 러시아의 가스를 EU에 직접적으로 공급하려는 계획인 Souty stream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의 대변자였다. 그는 투표의 80%가 정부개혁에 반대하는 헝가리의 보통선거가

있기 딱 일주일 전에 모스크바에서 서류에 싸인을 했다. 2006년 10월 6일에 주르차니는 의회에서 열린

신임투표에서 207대 165로 승리하였고 선거는 공적이게 했었다.

 

     사임

2009년 3월 21일에 주르차니는 국무총리의 사임을 발표하였다. 그는 금융 위기에 따른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주르차니는 자신의 당에 2주 안에 새로운 총리 후보를 뽑는 것을 요구했다.

헝가리의 대통령 László Sólyom은 2010년까지만 총리를 세우기 보다는 선거를 앞당겨서 선거를 더

일찍하는 것을 주장했다. 새로운  국무총리를 뽑는 가운데 György Surányi가 전반에는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나 3월 26일에 그는 후보에서 제외 되었다. 3월 28일에 주르차니가 당의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4월 14일 버르너이 고르돈이 후임 총리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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